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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를 통한 국가정체성 확립

by 레몬트리82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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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1960년대까지의 한국의 문화정책의 근본 목표는 국가의 정당성 확보에의 이용입니다. 남북이 이념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국가의 최우선 국정 이념은 반공과 체제 유지였습니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국정 이념을 실현하는 도구로 간주되었습니다. 국가의 문화에 대한 정책적 관심 자체가 매우 낮아 문화정책은 국정의 주요 어젠다로서 취급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도 빈곤 탈피와 생존 욕구 해결에 급급해 문화 향수 욕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화정책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정권의 정당성 확보가 주된 관심사였고 빈곤 탈피를 위한 경제 성장이 주된 국정 과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1970년대 제4공화국의 문화정책의 주요 목표도 문화를 통한 국가정체성의 확립과 이데올로기 확립 등이었으며, 이는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으로 조건 지어졌습니다. 민족 주체성 확립과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국정 이념의 최우선 과제로 남아 있으면서 문화정책은 이를 달성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국가 주요 정책 방향은 경제 성장 일반도였습니다. 문화정책은 경제 성장을 위한 하나의 보조적이면서 도구적인 수단에 머물렀습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문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꾀했다는 의미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문화정책이 경제 정책 우위에서 밀려나 주변부가 되었다는 의미로서의 도구였습니다. 문화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국민의 문화통제였으며 중앙정부가 주도적인 획일화된 정책을 통해 체제 유지적 성격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일방적인 대중교육에 치중하는 문화정책을 폈습니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국가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문화정책을 지배문화로 규정하고 여기에 맞서는 민중문화 내지 저항문화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두 문화가 분열 내지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조직도 분화, 독립되어 있지 못하고 다른 부처에 편입되어 있거나 부속되어 있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문화 행정 업무는 문교부와 공보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공보처는 주로 법령의 공포, 언론정보, 선전, 영화, 통계, 인쇄, 출판, 저작관 및 방송에 관한 사항 등을 관장했으며, 문화예술에 관한 업무는 특정의 업무를 제외하고는 문교부 내 문화국의 예술과 와 교도과에서 관장했습니다.

 

1952년 7월에는 헌법 개정과 함께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어 공보처가 가 공보실로 축소 개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공보처의 문화행정 업무가 모든 문교부로 이관되면서 최초로 문화행정 업무의 일원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문교부는 문화국 내 교도과를 문화 보존과로 개편하여 정부 수립 당시부터 존치되어 왔던 예술과 와 함께 예술, 출판, 저작권, 영화 검열 기타 문화행정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관장하도록 했습니다.

 

 

1961년 새로이 공보부가 발족해 문화행정 일부 업무를 분장하게 되었습니다. 조직구조상으로는 공보부가 문화행정을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여전히 문화행정 업무는 문교부와 공보부로 이원화되어 추진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원화 체제는 7년 후인 1968년 문화공보부가 발족함으로써 문화행정의 재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문화공보부는 1990년 문화부가 신설될 때까지 21년간 한국의 중심적인 문화정책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기간에 문화행정 조직 내에서도 과거에 비해 지속적인 전문화 과정이 진행되어 왔으며 이에 따른 조직 개편도 있어 왔습니다.

 

이 당시의 문화정책 내용은 매우 빈약했으며 그 범위도 매우 협소했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이 부재했다 하더라도 문화정책과 관련된 주된 관심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다만 이 기간에 문화와 관련된 법체계가 마련되고 정비됨으로써 제도적인 기반이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 제일주의 국가 어젠다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부족했으며, 국가의 투자 우선순위에서도 문화예술 분야는 후순위로 밀려났고 거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전문 예술 행정인이 부재했으며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도 상당히 제약을 받는 환경이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태동기의 문화정책의 핵심은 문화예술 공급자인 창작자 중심의 정책이었습니다. 문화정책이라는 것은 주로 예술가들과 예술단체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문화공보부가 발족됨으로써 1970년대에 들어와서 과거에 비해 문화정책이 상당히 활발하게 추진되었지만 이는 그 당시의 정치, 경제적 상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확대되어 온 문화정책 분야로서는 전통문화의 전승사업, 각종 문화행사, 계몽사업 등이었습니다. 또한 국제문화 교류사업도 추진되었습니다. 1970년대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은 문예 진흥을 위한 기본 방향으로 전통문화의 계승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를 내세우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문화예술 종합계획인 '문예진흥 5개년 계획'이 발표된 것입니다.

 

이 기간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근대적 의미의 전정한 한국의 문화정책의 출발점은 1972년에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서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후 1973년 문예중흥 장기계획이 수립되고 같은 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됨으로써 본격적인 문화정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문화정책의 역사가 짧은 것은 문화정책의 개념을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정부 혹은 공공 부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전 시기에도 넓은 의미에서 문화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시책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대증적 혹은 사안별 정책에 불과했으며 종합적인 시각과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정부의 개입과 지원방식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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