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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행정에서의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by 레몬트리82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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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예술지원금이 기존 예술단체보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진입한 신규 단체에게 배분되는 것을 반대하는 문화적인 논쟁이 일어났으며 이는 엘리트주의 대 대중주의 또는 비엘리트주의로 대변됩니다.

이러한 논쟁의 원인을 보면 예술 지원을 둘러싸고 잠재적 수혜자들 간에 상당한 경쟁이 있고, 규모가 큰 기성 예술단체는 예술무대에서 갓 진입한 신규 단체에 대해 지원금이 분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규모가 큰 예술단체들은 신규 단체들의 예술활동과 달리 자신들은 공인받은 예술이고, 정부의 예술기금을 늘리도록 로비한 것도 자신들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의 큰 몫을 자신들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예술 지원이 납세자, 즉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그 수혜 범위를 좁게 한정하는 것보다는 예술적 가치가 낮더라도 여러 분야로 확산시키는 것이 유리합니다. 따라서 가치 있는 소수의 예술단체에 정부 보조를 집중하려는 의도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동일한 정치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와이스조미르스키는 이러한 이슈 논쟁을 크게 연국, 오페라, 무용, 고전음악, 미술, 박물관 등 이른바 고급 예술의 기여자인 문화 엘리트주의자들과 민족음악, 미술, 민속공예, 소수민족 예술, 비전통적인 예술 등에 관심을 가진 대중 주의자들의 논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엘리트주의자들은 고급 예술과 순수예술에 대한 헌신 주의자들인 반면 대중 주의자들은 민속예술과 대중예술에도 관심을 갖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엘리트주의자들은 예술의 질적 가치의 보호자로서 자부하는 반면 대중 주의자들은 자신을 예술의 민주적 가치에 대한 옹호자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예술지원에 대한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사이의 입장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엘리트주의는 예술을 만드는 생산자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예술가와 관객, 전문가와 애호가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있으며, 천재성이 요구되는 예술 활동은 다른 대중적인 분야의 활동과 구분되는 것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트주의는 지원 기준을 예술의 질과 우수성에 두어야 한다는 것으로 예술의 질은 정평 있는 기성 예술 단체만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대중 주의자들은 예술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보급하고 이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예술에 대한 참여와 경험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와 관객, 전문가와 애호가 사이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 주의자들은 지원 대상을 널리 확산시킬 것과 예술 소비를 확대시키기 위한 지원을 주장합니다.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와의 논쟁은 우수성의 추구와 평등의 추구 사이에 벌어지는 민주주의 사회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질적 우수성 향상과 이러한 우수한 예술에 대해 대중들이 쉽게 접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절충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행정에서의 팔길이 원칙

문화행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정부의 역할에 대한 대표적인 원칙으로 영국이 주장해 오고 있는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습니다"는 "팔 길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문화예술 행정은 오랫동안 '팔 길이 원칙'을 고수해 왔으며, 1946년 '팔 길이 원칙'에 의해 운영되는 비정부기구로서 대영문화예술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예술 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적 영향응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하지 않고, 실질적인 권한을 다른 조직에 양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술은 정치가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어서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만 예술 관련 결정시에 예술위원회가 예술가와 정부의 완충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위원회는 매년 예산 액수를 정할 때를 제외하고 정부가 관여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의회의 의결 절차를 거친 지원금은 제한 없는 '포괄보조금'으로 예술위원회에 넘어갑니다.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예술위원회의 소관이었으며, 구체적인 지원 조건이나 공공 지원에 대한 책임성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팔 길이 원칙'에 대해 예술단체나 예술가들은 정치권의 간섭 없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했으며, 정치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예술과 관련된 시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이를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문화예술 행정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을 지원할 때 그 지원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형태의 예술을 지원할지, 어떤 근거로 결정할지 등이 불분명하게 규정되고 정책 결정 과정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책임 소재의 불확실 등 영국 행정의 고질적인 병폐가 문화예술 행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팔길이'팔 길이 원칙'을 정당화하는 '비정치성'도 그저 '원칙'에 그치는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영국 정부의 경우 문화예술 행정의 초기 단계에서는 비교적 예술위원회에 많은 자율성을 제공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정부의 직접 개입을 강화시켜 왔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상황에서 정부와 예술위원회의 관계를 특징짓는 데 순수한 의미의 '팔 길이 원칙'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간 예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예술위원회가 예술의 질 향상 및 자율성 보장의 문제에 집중함에 따라, 지원 혜택이 예술 생산자와 일부 소비자에게 집중되고 엘리트 예술과 대도시의 유명  예술단체가 우선시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50~1960년대에 걸쳐 예술위원회는 소수의 엘리트 예술기관을 먼저 집중적으로 지원한 뒤 예술의 접근성 제고 등 복지적 목적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따라서 주민들의 접근 제고는 개별 단체에 맡겨졌고, 1960~1970년대 좌파 성향의 예술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커뮤니티 아트 단체에서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진, 비디오, 출판 등에 중점을 두고 참여를 유도했으나 이들의 관객도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으로서 소외계층의 접근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팔 길이 원칙'은 지원의 직접적인 혜택이 예술 생산자에게 집중되다는 점과 공공지원금의 효율적인 집행을 유도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문화산업의 경우에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더욱 저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즉 문화산업을 창조산업이라는 시각으로 보면서 1997년 창조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정책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원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로는 문화의 핵심 요소인 창조성을 산업과 접목시켜 사고하는 창조성을 부가가치 창출의 새로운 원천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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