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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행정의 예상되는 가치의 쟁점

by 레몬트리82 202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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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자는 정책 담당자와 달리 정책에 대한 가치판단, 즉 어떤 정책이 더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하는 판단을 꼭 내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아가 논리실증주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판단은 주관적 가치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재되기 때문에 과학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를 따른다고 해서 가치문제가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정책과 관련해서 가치(또는 이념)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두 가지 차원에서 가능하고 또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는 가치에 포함된 인식적 언명이나 함축에 대한 실증적 평가입니다. 예컨대 음악에 대한 선호(고전음악 대 대중음악 등)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 즉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편이 선호하는 것이 더 좋은지 아닌지는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이러한 가치판단에 흔히 내재되어 있는 사실적 전제, 예를 들면 대중음악을 많이 들으면 불량 청소년이 되기 쉽다는 등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과학적 평가가 가능하므로 이 평가의 결과는 가치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치와 정책과의 관계, 그리고 가치들 사이의 내적 일관성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책을 지지한다면 양자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은 지적할 수 있습니다. 또 두 가지 이상의 가치나 정책 간의 조화나 통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경우 거나 이념 체계 내에 전제, 명제, 정리들이 있는 경우는 그들 사이에 모순이 있는지 논리적인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가치분석에 대한 접근 방법 중 여기에서는 후자의 방법을 통해서(아직 수립되지 않은 미래의 정책을 논의하므로)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대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중요한 가치 쟁점들을 몇 가지 논의해 보기로 합니다.

 

보편성 대 주체성

과거에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 개방화의 추세가 계속되면서 문화면에서 보편성 대 주체성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논란은 정책의 목표나 내용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동서의 이념적 장벽이 없어지고 경제면에서 세계화가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문화의 국경이 없어지는 지구마을의 시대가 우리들 목전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입니다. 문화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편적 문화를 우리 문화로 소화하지 않으면 국제 사회에서 낙오하게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화 개방의 압력이 커지고 국제화 과정에서 선진국의 문화 침투가 높아지기 때문에 민족문화를 수호해 문화 주체성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더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 이처럼 이해를 상반되게 하고 정책대안도 정반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의 보편성과 주체성에 대한 논쟁은 쉽게 조정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실제 문화정책은 이 두 가지 가치를 다 어느 정도 구현하려고 하겠지만, 마이클 잭슨의 서울 공연 허가에 관한 시비에서 나타났듯이 이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수용하지 못하고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는 가치에 따른 정책 대립이 일어날 것입니다. 

 

수월성 대 일반인

수월성 대 일반성의 논쟁은 문화정책의 오래된 쟁점 중의 하나로, 우월성을 지지하는 입장은 예술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를 수월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고, 예술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작품의 우수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적 지원 대상을 선정할 경우에는 소수의 우수한 작가나 작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이른바 집중적 지원 방식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일반성을 지지하는 입장은 수월성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며 다른 가치들 예컨대 교육적 효과,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시대정신의 표현, 문화 전통의 전승 같은 가치들도 예술 활동이나 결과를 평가하는 데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합적인 평가를 하면 작품의 우수성에 대해 소수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입장에서 바람직한 문화정책은 소수 정예 주의 대신 문화의 평균적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정된 재원이라도 될 수 있으면 골고루 많은 예술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분배하는 것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보게 됩니다. 또 이 입장에서는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예술 활동 자체를 짐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의 후생을 위한 복지적 기능을 한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게 된다.

 

 

규법 지향성 대 규법 중립성

예술의 규범 지향성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로, 1970년대~1980년대에 와서 민중 운학, 노동 예술 등을 표방하는 진보적인 인사들에 의해서 재연되었으며, 앞으로도 문화정책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통적인 예술관은 순수 예술론으로 정치적 이념은 물론 그밖에 교육이나 종교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도 문학이나 예술이 이용되는 것에 반대하고 예술은 규범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심미적 가치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정통 예술관은 인간의 경험이나 의식은 그의 물적 삶의 조건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서 정면으로 부정되었고, 소련을 필두로 등장한 공산국가에서는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계급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순수예술에 대한 비난과 부정은 좌익의 전유물은 아니어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이태리, 일본에 등장한 우익 독재 정권 하에서는 짓밟힌 예술의 순수성 대신 국가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 문화예술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예컨대 나치 독일에서는 선전상 밑에 문화예술을 통제하는 광범위한 기구를 두고 예술가들을 독일의 영광이나 전쟁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도구로 동원했습니다. 또 한편, 문화예술이 상업적 도구나 자본가의 도구로 전략하는 문제에 대해서 마르크스 학파에서는 자본주의 예술이 비 이념성을 표방하면서 실제는 자본주의 맹종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도구라고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오늘날 진보주의적 인사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고 민중을 위한 예술이라는 프락시스의 바탕 위에 예술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편으로 우익 진영에서는 국민정신의 개혁, 국가 발전의 동기부여를 문화예술이 선도해야 한다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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